[가시고기] 극단 파피루스 제18회 정기공연
"사람은 말이야!.. 아이를 세상에 남겨놓은 이상은 죽어도 아주 죽는게 아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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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 김희옥 | 정호연/홍성민 | 정 다움 /최현경 | 하애리/이은주 | 은미 / 김효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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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과장 / 이양순 | 송계장 / 김영호 | 여진희 / 이영주 | 의사 / 전동수 | 레지던트/김현지 |
연출/김장욱
"다움아 아빠 말 들리니? 아직도 의식이 없구나. 이제 몇 일 뒤면 결과를 알 수 있을 것 같아. 아빠는 다움이가 완치
되리라 믿어. 언젠가는 아빠와 다움이의 이야기를 해 주려고 했는데 지금밖엔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비록 듣지는
못하겠지만 이야기를 해주마. 어디서 부터가 좋을까? 그래 다움이 할아버지 이야기부터 하자 "
"다움이 할아버지는 석탄을 캐는 광부였단다. 그래서 탄광촌에서 살았지. 거긴 모든 것이 다 까맸어. 집도 개울도, 산도, 사람도,
겨울에 내리는 눈 마져도.... 아빠가 여덟살 때쯤 다움이 할아버지가 일하시던 막장에서 사고가 났어. 그때 할아버지는 유일한
생존자였지만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지.
그래서 동네 아이들은 고무다리 가짜다리, 십리도 못 가는 공갈다리 얼레 꼴레리....... 그날이후 할아버지는 언제나 술만 마셨어.
그러다 취하면 광업소에 가서 얼굴이 허여멀건한 소장에게 의족을 휘두르며 소리소리 지르곤 했지. 그러던 어느 날 제천장에
가셨던 다움이 할머닌 그 길로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으셨어. 그리고 할아버진 의족대신 칼을 휘두르셨지, 몇 달 뒤 깜깜한 밤에
아무도 모르게 할아버지가 돌아 오셨어"
"배고프냐"
"아부지"
"그럼 이걸 먹자"
"아부지 그건 농약이잖아요"
"다움할아버지: 먹기 싫으냐?"
"애비로선 더 이상 어쩔 수가 없구나. 이제부턴 네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게 그땐 뭔지 몰랐었어. 단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문득. 그날 이후 여러 고아원을
전전하며 살았어. 그리 쉽지 않은 나날들 이였지만..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또 결심했어. 다움이 엄마를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하다고 했지. 그때가 해병대를 제대하고 복학했을 때 한 여자가 다가왔어. 아빠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만났던 여자 중 가장 아름다운
아니 이 세상에서 가장 활기차고, 가장 똑똑하고, 멋있는"
"그렇게 우린 만났지. 그때이후 엄마가 자주 찾아 왔단다. 비가 와서, 바람이 불어서, 커피가 먹고 싶어서, 그냥 슬퍼져서, 그러다
정이 들고, 결혼을 했어. 물론 결혼식엔 아무도 오지 않았어. 참 쓸쓸한 결혼식이었지만, 그땐 엄마도 아빠도 행복했었어. 아빤
열심히 일했어. 여성지 기자를 하면서도, 돈 되는 일은 닥치는 대로 했지 번역도 하고, 자서전 대필도 하고. 아빠가 처음으로
가정이란 것도 가져보고 다움인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그러던 어느날이었어 "
"이혼해요 우리,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왜 그런 생각을 했지"
"남자가 생겼어요."
"어떤 남자지""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죠. 돈이나 걱정 하면서 구질구질 하게 살게 될 줄은 몰랐어요. 비록 당신이 최선을 다 해 살아 왔다
할 지라도 난 더 이상 당신과 살고 싶지 않아요."
"난 이혼에 동의 할 수 없어. 난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아.다움인 다움인 어떡해?"
"오랫동안 힘들게 생각한 거에요. 더 이상 다움이 에게 발목 잡히고 싶지 않아요. 이제부터 내 자신에게 엄격하게 살기로 했어요. "
"다움일 생각해서라도 다시 생각해봐. "
"오랫동안 생각해 결정 한 거라고 했잖아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요. 다움이 양육권도 포기 하겠어요. 이 서류 난 이미 도장
다 찍었으니까 당신 도장 찍어서 거기 적힌 변호사 사무실로 보내 주세요. 그럼 앞으로 볼 일도 없을 거예요. 아니 좀 있다가
프랑스로 떠나니까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거예요. 이만 갈께요."
"다움이 엄마는 같이 안 오셨나요. 네 좋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정다움 어린이는 백혈병입니다. 입원수속 하십시오.
지금 당장 항암 치료를 시작하지 않으면 3개월에서 6개월 이상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장담할 수 없다뇨. 어떻게 의사가 그런 말을."
"근데 어쩐 일이야? 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 부탁이라 정말 들어주고 싶은데. 미안하다. 요즘 I.M.F 때보다 더 힘든 거 같아.
아주 난리가 아니다. 야 거울 좀 보고 다녀! 임마! 사람 얼굴이냐? 귀신 얼굴이냐? 그게. 삼겹살 좀 더할래."
"
해야 하질 않을까요. 그래도 엄만데."
"쓸데없는 이야길 하는군."
쓰란 말입니까? 좋아요 당신들이 누구에게 맡기든 말든 우린 원고료만 받으면 되니까요. 아니, 여보세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되요. 한달 동안 밤잠 설쳐가며 애썼는데, 고작 계약금 50으로 관두자고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왜 무슨 일이야?"
줄 수가 없데요."
"뭐가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짚어 달라고 하지."
"이미 딴 대필 전문작가와 계약을 했데요. 이러고 있을 수가 없네요. 제가 가서 나머지 원고료를 받아올께요."
"선생님 나 얼마나 더 아파야 죽게 되나요? 이제 그만 아팠으면 좋겠어요. "
"주사가 많이 아프지? 우리, 조금만 더 참자. 곧 끝난다. "
"이만큼 아팠으면 나 죽어도 되잖아요. 죽으면 이제 안 아퍼도 되잖아요. 네? "
"다움아, 아프다는 건 좋아질 거란 신호란다. 네 몸 속에 있는 나쁜 병균들이 공격을 받아 마구 소리를 질러서 아픈 거야.
음...... 아파도 조금만 더 참자. 알았지?"
"다움아! 아빠 보여? 잘 참았어. 아빠도 밖에 있었어. 잘했어. 아빠 귀 만져보려구? 자, 만져봐! 아빠 안 울었어.
다움이도 안울었지? "
"하하하 정선생님 여기 계셨군요. 오늘까지 입원비 중간 정산 하시겠다고 했는데 ……. 하하 요즘 경기가 말이 아니죠.
고생하셨습니다. 그나저나 다움이가 빨리 완쾌해야 할텐데."
"그게 저……. 오늘 받기로 한돈을 아직 받지를 못해서 "
"도대체 와이 캅니꺼! 도데체 이게 벌써 몇번쨉니까? 매번 이러시면 진짜로 곤란합니다."
"죄송합니다. "
"죄송타카는 말로 될 일이 아이다 안 캄니꺼 "
"며칠만 더 말미를 주시면 꼭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짜로 믿어도 되는 깁니꺼. 하여튼 요번엔 학실히 약속을 지켜주이소 안그라몬 우리도 부득이 중대한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심더"
"중성 백혈구 수치가 많이 내려 갔습니다. 조혈모세포이식. 흔히들 골수 이식이라고 하지요. 현재로선 최선의 방법입니다. "
"또 얼마나 고통스런 치료과정을 겪어야 합니까? "
"골수 이식을 받기까지 지금보다 심하게는 열 배 강도의 항암제를 투여하게 됩니다. 국부가 아닌 전신 방사선 조사는 물론이구요 "
"다움이는 지금의 항암 치료도 제대로 견디지 못하고 있어요. 게다가 전신방사선..... 안됩니다. 그럴 순 없습니다. 저, 수술 성공률은
어느 정도나 됩니까?"
"글쎄요, 하지만 분명한 건 유일한 완치의 기회라는 겁니다. 이식후 성공적으로 세포가 자리를 잡는다면, 그리고 부작용을 잘 극복
한다면 거의 완벽할 정도로 치료가 됩니다"
"난 학교에 입학한 후로 제대로 학교에 다녀 본적이 없어. 그래서 친구도 없어. 난 나으면 축구를 할거야 그래서 꼭
될 거야. 아빠랑 소풍도 가고, 운동회에서 달려도 보고 그래서 꼭 손등에 스템프를 찍을거야.. 아빠랑 놀이동산도 가고, 바이킹도 타고
바다도 가고.. 아빠랑 등산도 가고… 낚시도 하고, 돈도 데땅 많이 벌어서 아빠 노트북도 바꿔 주고….. 너랑 결혼도 하고, 히히……"
"자 약 다 먹어야지. 다움아. 엄마가 프랑스에서 돌아왔다. 엄마를 만나야 겠지"
"아빠는요"
"아빠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 "
"난요 아빠가 중요해요. 난요 엄마 보고 싶지 않아요.."
"마가 다움일 많이 보고 싶어 할 텐데. "
"아니요 아빠가 틀렸어요. 엄만 날 보고 싶어 하지않아요"
"다움아…"
"아빠. 미안해요 아빠가 걱정할 까봐 정말 토하지 않으려 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아빠 죄송해요. 아빠 죄송해요."
"내앞에 구질구질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건 실례 아니에요. 시골에서 농사라도 짓다 온 거에요. 아님 무슨 의도를 갖고 일부러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 건가요?"
"할말이 있어"
"아이가 많이 아파. 그런데 아이를 만나려면 빨리 와야 할 꺼야. 퇴원할 수도 있거든."
"좀 문제가 있습니다. 골수 기증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멀었어요. 게다가 얼마 전에 메스컴에서 기증자가 후유증을 알았다는 말도 안되는 보도를
무책임하게 하는 바람에 샘플조차도 구하기 힘들어 졌습니다. 도데체 메스컴은 뭐 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습니다. "
"공여자를 찾지 못한 겁니까? "
"최종적으로 맞는 샘플이 없군요. "
"그럼 이젠 어떻게 하죠? "
"계속 치료를 해야죠."
"이식이 최후의 방법이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러면 기존의 방법으로 치료를 계속 한다고 합시다. 얼마나 더 살 수 있습니까? 삼개월? 육개월? 일년? "
"...... 진정하십시오. "
"대답을 못하시는군요. 그러면서 계속 치료를 받으라니 너무 잔인하군요. 퇴원하겠습니다. 어차피 마찬가지 결과라면 당연히 퇴원해야 옳은 거 아닙니까? "
"퇴원이 아이의 한계를 앞당길 겁니다. "
" 압니다, 너무 잘 압니다. 작은 침대에 매여 독한 약과 주사로 고통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더 이상은 안됩니다. 우리 다움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좋은 옷 입고, 좋은 신발 신고, 좋은데 놀러 갈 겁니다. 늦기 전에 지켜줄 약속이 너무 많이 남았습니다. "
"선생님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대로 치료를 중단하면 백혈구수치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질 겁니다. "
"퇴원하겠습니다. 퇴원하겠습니다. 아파도 제품 안에서 아프게 하겠습니다. 필요한 조치를 해주십시오."
"아빠 고맙습니다. 병 낫게 해 준거, 산에 가는 거, 머리삔 모두 다요"
"정선생님,다시 한번 생각해보시죠."
"아니요 가겠습니다."
"다움이 퇴원하니? 우야노 고마."
"아빠, 오줌 누고 싶어요."
"저기 화장실은 안 돼. 아주 지저분하거든."
"여기서 오줌 누면 사람들이 욕할 거예요."
"괜찮아."
"창피해요."
"아빠도 같이 눌 텐데 뭐가 창피해. 누가 멀리까지 나가는지 시합하는 거다"
"아빠가 널 업어주고 싶어서 그래. 우리다움이 갓난애였을 때는 아빠가 꼭 업어줘야 잠을 잤는데. 다움일 업고 동네를 몇 바퀴 돌아야 겨우 잠이 들었지.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때 인걸. 다움일 업으면 구름을 업은 듯 했지. 뭉게구름. 새털처럼 가볍고, 햇볕처럼 따스한 뭉게구름. "
"아니 이건 아빠가 움직여서 그런거잖아 다시해!"
"좋아 다시해. 가위바위보..보..보..찌 아하하 아빠가 이겼지. "
'아빠 이거 뱀탕인지 나도 알고 있어. 나를 위해 온종일 산을 헤매면서 뱀을 잡고 버섯을 따는것도 알고 있어. 아빠 고맙습니다'
"다움아, 이렇게 아빠와 다움이는 살아 왔어. 다움이가 이 아빠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해도. 아빠는 기뻐. 아주 후련해. 아빠의 이야기를 다해주었으니.
이제 아빠는 다움이 속에서 다움이와 함께 살아가는 거야. 영원히 다움이와 동행하는 거야."
"다움아 다움아!"
"아빠 괜찮아요. 조금 피곤한 것 뿐이에요"
"괜찮기는 몸이 불덩이야? 몸이 이렇게 아프면 진작에 이야기 했어야지"
"아빠!! 아빠~~~"
"다움아! 다움아!"
"하나님, 그래요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 줄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 아들은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아니 아이를
송두리째 사로잡고 있는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너무도 잔인합니다. 아시잖습니까? 지금까지 고통 속에서 살아온
아이입니다. 웃음보다는 눈물에 기쁨보다는 슬픔에 휩싸여 이제껏 꾸역, 꾸역 살아온 아이입니다. 엄마는 아이를 버렸고, 아버지는
무능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 아이를 줄곳 외면해 온건 당신입니다. 난 아이에 대한 당신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부당합니다.
억울합니다. 아이를 살려 주십시요. 댓가를 원하신다면 제 목숨을 거둬 가십시요. 기꺼이 아이를 대신 하겠습니다. 부디. 부디 제가
아이를 대신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요. "
"당신이란 사람,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죠? 어쩌면 아이를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을 수가 있어요. 좋겠군요."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지?"
"병원측 이야기로는 퇴원할 상황이 아니었더군요. 그런데 당신은 아이를 퇴원시켰어요. 왜죠? "
"희망 없는 치료로 다움일 괴롭히고 싶지 않았어. 하루에 먹어야 하는 알약이 400알이 넘어, 게다가 주사까지. 그리고 항암치료는
상상이상으로 참혹해 더군다나… "
"이제부터 아이한테 손때요. 당신은 아버지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 당신이 다녀간 이틀 후 병원에 왔었어요. 이미 퇴원 했더군요.
민과장님 말씀이 일본에서 골수를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더군요. 당장 민과장을 만나보세요"
"저, 송계장님 해병대 나오셨습니까? "
"다움이 보호자분도 해병대 출신이심니꺼? 어이서 근무했심니꺼?"
"선배로서 떳떳한 모습을 보이지 못해 미안할 뿐입니다."
"다움이 밀린 치료비 때문에 송계장이 많이 힘둘지? 하지만 날 좀 도와줘. 그 신장 매매라는 거 나는 하면 안될까? "
"내키는 일은 아닙니다만 어쩌겠습니까, 선배님의 사정이 하도 딱하니...... 어쨌든 먼저 선배님께서 약속해 주실 것이 있습니다.
장기 거래가 불법이라는 건 익히 알고 계시겠죠? 병원 측에서 알면 그 날로 난 모가지입니다."
"그럼 다른 장기도 가능하단 말인가? "
"각막 정도죠. 하지만 신장과는 달리 각막은 제공하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신장이야 하나 떼줘도 지장이 없지만 각막이야
어디 그렇습니까? 그런 만큼 신장보다 두 배 이상의 금액을 받을 수 있긴 하죠. 우선 건강검진부터 받으시죠"
"신장의 두배... 삼천, 육천..."
"조각을 배웠니? 배우지 않았어? 하긴 니 아빠가 신경쓸 사람이 아니지! "
"난요, 아빠가 중요해요. 엄마 필요 없어요"
"양육권을 포기하세요. 당신한테는 더 이상 아이를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해요. "
"무슨 근거로 "
"지금 집도 직장도 없고, 가진 건 더더욱 없으면서 아이의 치료비는 어쩔 셈이죠? 이대로 있다간 골수 이식은 커녕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아이를 또 퇴원시키겠죠."
"당신 마음 편하자고, 당신 잠자리 편하자고 이제 와서 다움이를 책임진다는 말이야. 그럼 나는, 나는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말인가?"
"솔직히 다움이가 당신보다 날 더 닮았더군요. 조각에 놀라운 재능이 있어요. 아이의 아까운 재능을 썩히지 말고 저와 제 남편에게 아이의 장래를
맡겨볼 의향은 없나요? 우린 이틀 뒤에 프랑스로 돌아가요. 그전에 답을 주면 좋겠군요."
" 결국 그것 때문 인가. 다움이의 재능, 당신의 허영심을 충족 시킬만한 다움이의 재능. 잘 돌아가."
"간에서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
"예? 종양이라고 하셨습니까? "
"악성 종양입니다. 다시 말해 간암......그것도 말기군요. "
"선배한테 구박을 받지 않았더니 일이 도무지 손에 잡히질 않아 구박받을 짓을 했어요. 어제 원무과에 전화를 걸어봤더니 예치금 이야기 하데요.
주제넘은 짓인 줄 알지만 어쩌겠어요, 내 천성이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걸요. 이건 원무과에서 발행한 영수증이구요. "
"진희 씨가 돈이 어딨다고.... "
"그런 얼굴로 쳐다보지 말아요 선배의 머릿속에는 여진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줄 잘 알지만 다움이가 완치되고 나면 선배에게도 여유가
생기겠죠. 그때 생각해줘요.저 가볼께요. 마감 때문에.. "
"자존심은 아무래도 좋아. 정말이야. 하지만 아이의 치료비만큼은 내 손으로 마련하고 싶어. 각막 매매를 부탁하고 싶어.... "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각막과 신장은 다른 거라 구요. 못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
"다르지 않아. 각막이든 신장이든, 적어도 내게는 동일해. 육 개월을 한 눈으로 살든 두 눈으로 살든 그게 뭐 대수겠어.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에겐 아이밖에 없었어. 머지않아 아버지 없이 세상을 살아가야 돼. 아비 없는 자식. 나도 겪어봤지만, 아이에게 오랫동안 깊은 상처로
남을 꺼야. 그러니 아이를 위해 아버지로서 마지막으로 무엇인가를 하고 죽어야, 그래야 덜 억울할 것 같아. 이게 내 마음의 전부야. 이제까지
송 계장에게 많은 신세를 졌어. 달리 갚을 길이 없어서 속상하지만 어쩌겠어, 날 한 번 더 도와줘.
"지한테 부탁한다고 해서 될일이 아니라 안캅니꺼."
"부탁하네"
"이거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지만… 여기 가 보이소. 지는 증말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다움아! 밥묻나. "
"아저씨도 식사 하셨어요."
"그래 자슥아 근데 니 아빠 오늘 오시는 날이지?"
"예. 아저씨 저랑 당연하지 게임해요"
"아빠 눈이 왜 그래요? "
"으응, 별거 아니다. "
"다쳤어요? "
"다치긴? "
"눈병이 났나요? "
"눈병은 나쁜 병균 때문에 생기는 거니까 다움이 한테 올 수 없지. 한쪽 눈이 피곤해서 좀 쉬라고 붕대로 가려놓은 거야..... 그 동안 밥은 잘 먹었니? "
"금방 괜찮아지는 거예요? "
"눈 말예요, 정말 괜찮아요? "
"조금 거북해. 다움아! 아빠를 사랑하니? 아빠한테 사랑한다고 말해줄래? "
"아빠 사랑해요. 아빠, 힘들지?"
"아니! "
"아빠 미안해"
"아니야. 그럼 다움이는 아빠 아프면 간호 안 해 줄꺼야? "
"엄마는 나랑 아빠를 떼어놓으려고 해요 "
"엄마가 다움이를 그만큼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야. "
"아빠도 날 프랑스로 보내고 싶은 거예요. "
"다움아! 수술 자신 있지?
"....예 "
"큰 소리로 말해봐. "
"자신 있습니다.! "
"고맙다...... 고맙다, 다움아."
"그리고…… 그리고 많이 생각해 봤는데, 다움이는 역시 당신이 맡는 게 좋겠어. "
"어쨌든 좋아요. 아이를 맡겠어요. 당신한테도 조건이 있을 테니까 먼저 말해봐요. "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굳이 조건을 말하라면……다움이를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이해하는
엄마가 되었으면 해. 그 뿐이야. "
"노력하죠. 대신 각서를 준비하세요. 아이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각서 말예요. "
"선배. 선배 필름 말예요, 역시 선배 거였더군요. "
"지금이 다움이한테는 가장 중요한 시기야. 기적적으로 찾아온 마지막 기회. 내가 반드시 다움이 곁에 있어야 돼. "
"선배는요? 마지막인 건 선배에게도 마찬가지예요. 다움이 한테 아빠로서 할 만큼은 했어요. 더 이상 바보같이 굴지 말아요.
이제 다움이는 엄마한테 맡겨요. 다움이한테 쏟은 정성 십분의 일, 아니 백 분의 일만이라도 선배 자신에게 쏟아봐요, 제발 "
"진희씨, 사람은 말이야.... 아이를 세상에 남겨놓는 이상은 죽어도 아주 죽는 게 아니래. 사랑은 빚진채 떠나면 안되는데,
그런데... 미안해. 진희씨 나 그 진통제 돌려줘."
h
"중성 백혈구 수치 육백, 혈소판 이만 오천. 성공입니다. 생착 된거라구요. 세포 검사에서도 확인됐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아빠 "
"어 다움아 이식된 골수가 다움이 몸에서 잘 자라고 있는 것이 확인됐데. 이제 다움이는 아무 걱정 없다. 무슨 말이든 해봐.
먹고 싶은 거나 하고 싶은 거 말하면 더 좋구.
" 아빠…눈.. 아직도 아파요..아빠 귀 한번 만져봐도 돼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각서도 썼어. 그리고 이 노트는 다움이와 떨어질 걸 대비해서 써 둔거야. 여기에 다움의 모든 것이 담겨있어.
다움이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의 기록과 다움이의 성격, 행동, 장점, 단점, 취미, 버릇, 좋아하고 삻어하는 음식"
"전 다움이 엄마에요. 이런 건 필요 없어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커 나갈 거에요"
"제발 읽어줘. 다움이를 빨리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꺼야
"골수 이식을 받는 동안 들어간 병원비에다 좀더 보탰어요. 아이를 맡은 이상 병원비야 당연히 내 책임이죠. 다른 뜻은 없어요.
그저 확실하게 해 두고 싶어서예요. "
"아직도 무엇이 부족해 확실히 하겠다는 거지? 날 더는 비참하게 만들지는 마. 받은 걸로 하겠어. 대신 보관했다가 다움이를 위해 써 줘.
그리고 이번 치료비까지는 내가 마련하게 해줘. 나 돈 있어. 지나치게 많이. "
"다움엄마: 좋아요. 정히 싫다면 할 수 없죠. 하여튼, 지금 이 순간부터 아이 앞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면 해요. "
"다움아. 다움이는 똑똑하니까 지금부터 아빠의 말대로 해야 한다. 좀있으면 엄마가 다시 올꺼야."
" ……왜요? "
"널 사랑하니까 오는 거야. "
"아뇨, 엄마는 날 사랑하지 않아요. "
"어째서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
"엄마는 나빠요. 엄마는요, 날 버렸어요. 아빠한테도 그랬구요. "
"그냥 팍 죽어버릴걸 그랬어요. 일본 누나는 뭐 하러 나타나서 나한테 골수를 줬는지 모르겠어요. "
"다움아!"
"아빠 사랑해요. 아주 많이요. 나한테는 아빠만 있으면 되요."
"아빠는 이제 지쳤다. 그래서 널 돌보는 게 몹시 힘들어. 아빠도 이젠 아빠의 일을 하고 싶어."
"힘든 건 다 지나갔잖아요. 아빠는 아빠 일을 하면 되잖아요. 앞으로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척척할 수 있어요. 아빠 귀찮게 안할께요.
신경질도 안 부리구요, 아프지도 않구요. 아빠 말대로 지난번처럼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날 엄마한테 아주
보내지는 말아요. 약속해요. "
"이 임마! 아빠가 하라면 해야지. 무슨 이유가 그렇게 많아? 아빠는 더 이상 너랑 같이 지낼 수가 없다고 했잖아. 엄마한테 안 가겠다면,
그럼 고아원으로나 갈래? 그래서 아빠처럼 매일 매나 맞고 구박이나 받을래?"
"아빠, 머리가 너무 아파요. 의사 선생님 좀 불러 주세요 "
"다움아, 그 동안 네가 이렇게 아팠었구나. 아빠는 몰랐다. 네가 아프다면 그냥 약만 먹일 줄 알았지. 그 고통의 깊이가 얼마인지 몰랐다.
아들아 너는 이 크나큰 고통 속에서 그 많은 날들을 보냈구나. 미안하다. 아빠는 미쳐 몰랐다. 네가 아프면 그저 대신 아프겠다는 마음뿐이었는데
그 마음 조차 이 고통 속에서는 덧없는 것 이었구나…."
"참기 힘든 고통일 껍니다. 원무과 송계장한테 이야기 다 들었습니다. 저번에 친구꺼라고 가지고 오신 간암환자 씨티 필름이 정선생 것이라고요.
그몸 갖고 어떻게 아일 돌봤는지 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고통이 극심 하시죠?"
"다움이 선생님 우리 다움이는 어떻게 ......"
"다움인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일시적인 쇼크 현상입니다. 아무문제 없습니다. "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왜 숨기셨습니까? "
"무서웠습니다. 골수 증여자가 나타나고, 다움이가 이식 수술을 받게 되는 그 모든 희망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릴 것 같았어요. 내가 살려고
치료를 받는 동안 그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릴 것 같았어요. 내가 아이를 대신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아이는 물론 아이 엄마한테도 절대로
비밀로 해주십시오. "
"그리고 진통제 정도로는 다스릴 수 있는 고통이 아닐껍니다. 제방으로 가시죠. 제가 모르핀이라고 놔 드리겠습니다."
"아이가 울고불고 난리예요. 지금 병원으로 와줄 수는 없어요?"
" …… 몇 시에 병원에서 나가야 하지?"
"일곱시쯤 요"
"그럼 정확히 일곱시에 만나. 소아병동 뒤에 벤치가 있어. 거기에서 기다릴게. 아니, 당신을 올 것 없어. 아이만 보내. 잠깐이면 돼."
"불빛 때문에 아빠가 잘 안보여요. 아빠 옆에 앉아도 돼요? 나는요, 오늘밤에 프랑스로 떠나야 한 대요."
"비행기를 탈 거예요. 아빠도 알잖아요, 내가 미끄럼틀에도 못 올라가는 겁쟁이란 걸요.…… 아빠를 만나게 해 달라고 떼를 썼어요.
이것도 아빠가 사준 옷이잖아요."
"엄마가 많이 속상했을 거다. 프랑스에 가서는 그러지 마라. "
"…프랑스에 도착해서 아빠 핸드폰으로 전화해도 되죠? "
"안 된다. "
"편지는요? 편지는 써도 되죠? "
"아니, 그럴 필요 없다. "
"그럼 아빠가 날 보러 올 거죠? "
"기다리지 마라. "
"그럼 아빠를 언제 만날 수 있나요"
"스무 살이 되기 전에는 이 땅에 돌아올 생각조차 하지 말아라."
"그렇지만 아빠, 스무 살이 되려면 팔년이나 넘게 남았어요. "
"팔년은 긴 세월이 아니다…… "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 돌아가라. 주머니에서 손을 빼라…… 턱을 들어라…… 어깨를 쭉 펴라. 됐다. 앞으론 그렇게 씩씩한 모습으로 살아라.
…… 넌 평생 아파야 할 것을 한꺼번에 다 아팠던 거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아 파선 절대 안 돼.. 아빠는 널 잊을 거다. 그러니 너도 아빠를
잊어버려라. 아예 아빠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라. 아빠로선 더 이상 어쩔 수가 없다. 이제부턴 네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어서 가라.
절대로 뒤돌아보지 마. 그냥 씩씩하게 엄마한테 달려가기만 해. 가라."
잘가라, 아들아 . 잘가라 나의 아들아 이젠 영영 너를 볼 날이 없겠지. 너의 목소리를 들을 길이 없겠지. 너의 따뜻한 손을 어루 만질 수
없겠지. 다시는 너를 가슴 가득 안아볼 수 없겠지. 하지만 다움아. 아아 나의 하나뿐인 다움아. 아빠는 죽어도 아주 죽는게 아니란다,
세상에 널 남겨 놓은 한 아빠는 네속에 살아 있는 거란다. 네가 지칠 까봐, 네가 쓰러질 까봐, 네가 가던 길 멈추고 돌아 설까봐 마음
졸이면서 너와 함께 하는 거야.영원히 영원히…….
내가 이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아빠뿐이고, 아빠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언제까지나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건 바로 아빠예요.
그렇게 중요한 걸 왜 잊어버렸을까요. 내가 없어지면 아빠는 어떻게 될까요?
아빠 말대로 속이 시원 할까요. 자꾸만 가시고기가 생각납니다. 돌 틈에 머리를 박고 죽어가는 아빠 가시고기.
내가 없어지면 아빠는 슬프고 슬퍼서, 정말로 아빠 가시고기처럼 될지도 몰라요.
아빠 사랑해요 사랑해요 아빠. 건강하세요.
The end...
2008.11.19 극단 파피루스 제18회 정기공연 [가시고기] 리허설
D300 / 17-55 2.8G